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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는 일제 시대에 생겨난,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오래 된 장르이다.
'트로트'라는 이름은 미국 춤곡의 하나인 폭스트롯에서 왔다. 민족주의자들은 트로트가 일제 시대 때 역시 미국 음악에 영향을 받아서 생긴 일본의 엔카에 음계를 포함한 많은 점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비판을 한다. 트로트를 옹호하는 사람은 이 음악이 일제 시대 이전부터 서양 음악에 영향을 받아 발달해 왔으며 일본의 음악과는 독자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내용출처 : 위키백과
【2】
서민들의 애환과 삶의 향기를 담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라도 즐겨 불려지는 트롯트!
때로는 소박하고 순진무구하게 살아가는 민초들의 생활가요로, 때로는 국권을 되찾기 위한 저항가요로, 또 때로는 침략자와 맞서 조국을 지키려는 선무가요로, 또 어떨 때는 권력에 종속된 목적가요로 시대와 함께 부침하는 영광과 오욕의 저 편에 "트롯트"는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사는 곧 "트롯트"의 역사와 함께 숨쉬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 혼을 일깨워 독립에 대한 희망과 일제의 잔학상을 고발하는 저항가요로 나라잃은 설움과 일제의 착취에 이그러진 민중의 가슴에 위안과 꿈이 됐던 "트롯트"
그 한편으로는 비록 강압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대동아 공영권의 기치를 내 건 일제를 찬양하는 찬일가요 혹은, 징용과 전쟁 위안부 징발을 정당화하는 제국가요로 이질화하는 사생아이기도 했던 "트롯트"
그러나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공산당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전선에 나선 젊은 용사들의 고향이요 어머니의 품과 같은 위로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 역시 "트롯트"였다.
자유당 정부의 학정을 보다 못해 일어 선 것 역시 "트롯트"였고, 경제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조국의 재건 현장의 망치소리를 힘차게 들려 준 것도 "트롯트"다.
때때로 선정적이고 상업적인 나락에서 벗어나지 못해 지탄받던 시절도 있었으나, 우리는 "트롯트"와 함께 울고 웃고 좌절하고 또 번영해 온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트롯트"가 그간 제 모습으로 이해되지 못하고 굴절되고 왜곡된 모습으로 일그러져 있다.
심지어는 "트롯트"는 거짓음악 운운 하며 까닭없이 돌을 던지는 이도 있다.
"트롯트요? 그게 음악이랄 수 있나요? 그 노래가 그 노래 같고 형식이나 내용이 너무 뻔하잖아요. 너무 싸구려 음악 같아요." 언젠가 필자가 어느 대학생에게서 들었던 트롯트에 대한 젊은층의 비판이었다.
"내 사연같습니다. 어쩌면 내 사연을 그리도 잘 알고 있듯이 노래를 만들 수 있었는지 신통합니다. 그래서 트롯트가 좋은거죠." 중년을 바라보는 세대가 필자에게 들려준 트롯트에 대한 예찬론이다.
그렇다면 "트롯트"라는 음악을 놓고 왜 이렇게 세대간의 평가가 극명하게 달라지는 것일까?
그것은 살아온 세대의 문화와 가치관이 다르고 음악을 향유하는 방식과 미디어적인 수단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위 두 세대에게 거꾸로 물었다.
"젊은 이에게는 우리들만의 언어와 표현이 있죠. 감각적이고 직설적이고 또한 유머러스한 세련된 여러 가지 형태로요. 댄스뮤직과 랲 속에는 우리 사회와 기성층들의 많은 부정적인 면을 극복하려는 시대정신이 있는데, 트롯트는 사랑타령 아니면 눈물이잖아요. 의식도 없고......"
"랲 댄스 노래를 아무리 듣고 이해해 보려고 해도 가사가 무슨 소릴하는지 당최 알아 들을 수가 없어서 못 듣겠어요. 그리고 이 노래나 저 노래나 우리 귀에는 똑같은 노래로 들려서 뭐가뭔지 모를 때가 많아요."
우리는 이 대답에서 보듯이 세대간의 몰이해 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수용도도 너무나 큰 격차를 보이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젊은 이들의 다수는 "트롯트"를 이해하지 못하고, 중장년층들은 "랲.댄스"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마치 서로가 서로의 장르를 잘 아는 것처럼 배척하고 무시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문화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이 서로 병존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기호를 충족시켜 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온통 10대를 중심으로하는 젊은층의 음악 일변도로 기울어져 있다.
70년대 낭만을 구가했던 이제는 40대~50대가 된 중년들의 음악 - 포크 송은 지금 양수리.대성리등의 까페촌으로 쫒겨나 있고, 이 나라의 근대사와 함께 호흡했던 "트롯트"는 그나마 방송의 한 귀퉁이에 소위 "보호차원"의 극빈자 구호받는 모습으로 찌든 채로 쪼그리고 앉아 있다.
오늘 우리는 "도" 아니면 "모"라는 식의 전제 군주국가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음악 일체주의" 와 "옐로우 저널리즘"에 이미 깊이 물들어 있고, 끊임없이 음악의 획일화의 선봉대에 가담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아버지.어머니가 부르는 "트롯트"를 비하시키고, 나아가 그 분들이 좋아하는 노래 "트롯트" 대신에 신세대 노래를 가르치려고 하는 극히 불손한 기도마저 자행됨을 우리는 본다.
이런 반성없이는 "트롯트"든 "댄스" "발라드"든 어떤 장르의 음악이건, 대중음악을 얘기하는 자체가 무의미할 뿐이다
내용출처 : 검색
來源:Daum 新知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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